김철홍교수, 개교회주의를 버리면 특정집단의 독재가 시작

가 -가 +

편집인
기사입력 2019-11-01 [04:11]

▲     © 편집인

 

장신대 김철홍교수가 국정교과서 채택 이후 명성교회건에 대해서 입을 열었다.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교수로서 자신의 입장을 표명한 것은 고무적인 일이라 생각한다. 김철홍교수가 국정교과서 문제를 언급할 때도 어떤 교수도 이에 대해 언급하는 교수는 없었다. http://www.christiantoday.co.kr/news/326408#_enliple

 

김철홍교수를 무시하거나 사회학을 토대로 한 김철홍교수에 대해서 반박할 자신이 없어서 일 것이다. 장신대 교수로서 명성교회 부자승계건에 대해서 신약학을 전공한 소기천교수와 김철홍교수가 용기있게 자신들의 입장을 발표했다.

 

그런면에서 C채널은 언론을 최대한 활용해야 하고, 명성을 중시하는 교수들도 늦었지만 명성과 상관없는 소기천교수나 김철홍교수처럼 보다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견해를 피력할 필요가 있다.  소기천 교수는 페이스북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개혁교회는 중세의 교황들이 교회의 전통과 교리를 중시하여 성경의 가르침에서 벗어 난 것에 대한 강력한 항거로 시작된 교회입니다. 개혁교회는 교회의 교권이나 교조보다는 성경의 가르침으로 돌아갈 것을 촉구한 점에서 교회의 기본과 본질로 돌아가자는 운동입니다. http://kidogkongbo.com/523

 

▲소기천 교수 글



김철홍 교수의 입장

 

김철홍교수도  크리스천 투데이에 종교개혁의 성과 중의 하나는 개교회주의라고 주장했고 종교개혁은 개교회 개념을 만들어 냈다고 하면서  "개교회의 권리와 자유를 보호하는 것은 오늘 날 자유민주 사회에서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고 했다. 


종교개혁의 중요한 성과 중 하나는 개(個)교회주의를 교회정치 원리로 확립한 것이다. 그 때나 지금이나 가톨릭교회의 정치제도는 교황을 왕으로 하는 세속의 '전제군주제'(tyranny)에 해당한다. 가톨릭 성당과 성도들은 오늘 날 프로테스탄트 교회와 성도들이 누리는 자유와 권리를 누리지 못한다. 그 자유와 권리는 개교회가 스스로 자치(自治), 즉 스스로 다스리는 것(autonomy)에서 나온다. 개교회는 자신에 관한 문제는 스스로 한 명의 군주(君主)가 되어 스스로 결정한다.

 

종교개혁은 '개교회' 개념을 만들어냈을 뿐 아니라, 독립적이며 자율적인 '개인'(個人)의 개념도 함께 만들었다. 자유민주주의 제도가 등장하기도 전에, 시민혁명을 통해 독립적 '개인'인 근대적 시민이 등장할 길을 열어 주었다. 근대적 시민이 독립적 개인으로서 자신의 행복을 추구할 권리와 자유를 갖고 있는 것과, 개교회가 자신을 위한 최선의 선택을 할 권리와 자유를 갖는 것은 종교개혁을 통해 생겨난 쌍둥이 정치원리다. 개교회는 마치 한 명의 개인처럼 자유와 권한을 갖고 있다. 때문에 개교회의 권리와 자유를 보호하는 것은 오늘 날 자유민주 사회에서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 특히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삭제하자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오늘 날, 개인과 개교회의 자유는 더욱 존중될 필요가 있다.

 

교인들의 담임목사 결정권

 

김교수는 개교회가 누리는 자유와 권리는 담임목사를 스스로 결정하는 권리라고 했다.


그렇다면 개교회가 누리는 자유와 권리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자신의 담임목회자를 스스로 결정하는 권리일 것이다. 가톨릭처럼 상부의 권위가 개교회의 담임목사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해당 교회의 성도들이 담임목사를 결정할 '배타적' 권한을 갖는다.

 

법은 윤리가 아니라 권리이다

 

필자도 2017.3.20.(http://kidogkongbo.com/143) "법은 윤리가 아니라 권리"라고 말하면서 천부인권인 교인들의 권리가 침해되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장로교신학, 신앙고백, 헌법에 따라서 교단안에서 직계비속의 혈연차별, 목사, 장로의 직위차별, 여성의 성차별, 연령차별이 있어서는 안된다. 개혁보다 인권이 우선하기 때문이다. 인권의 침해는 개혁이 아니라 개악이다.  이는 세습을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라 전임목사의 권리보다 교인들의 권리를 우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법은 윤리가 아니라 권리이기 때문이다. 세습을 방지하는 것은 좋은데 천부인권을 부여받은 교인들의  권리가 침해되는 것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개교회성을 버리면 특정집단의 독재 우려해야

 

김철홍교수는 명성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공공성을 두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김교수는 공공성과 공적신학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개교회주의를 일만악의 근원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그러므로 개교회성을 버리면 특정집단의 독재가 우려되는 것이다. 

 

명성교회 문제의 밑바탕에는 바로 이 개교회의 권한을 인정하자는 주장과 다양한 이유를 들어 인정할 수 없다는 주장이 대립하고 있다. 명성교회의 문제를 세습으로 규정하고, 반대하는 분들의 주장은 대체로 교회의 '공공성'(公共性)에 그 명분을 두고 있다.

 

첫 번째 선택지는 아쉽긴 하지만 개교회의 선택을 존중하고, 거기서 물러서는 것이다. 이것은 개교회주의와 자유민주주의의 원칙을 지키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개교회의 권리를 지켜주는 것이 궁극적으로 집단 내부의 모든 교회와 구성원에게 더 큰 유익을 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두 번째 선택지는 집단의 이익을 강요하면서, 끝까지 개교회의 권한을 인정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개교회주의를 포기하자는 것이다. 사실 공적신학을 주장하는 분들 중 상당수는 개교회주의를 만악(萬惡)의 근원으로 보고 있다. 그들의 주장처럼 개교회주의를 버리면 어떻게 될까? 특정 집단의 독재가 시작될 것이다.

 

집단주의 보편화는 전체주의 사회로 가는 것

  

김교수는 집단주의가 보편화되면 조지오웰의 소설 『1984년』에 묘사된 국가처럼 될 수 있다고 경계한다. 『1984년』은 정부가 국민들의 일상생활을 통제하는 북한과 같은 전체주의 사회의 부당성을 지적한 소설이다. 김교수는 교회뿐만아니라 대한민국자체가 집단이 개인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되어버렸다고 집단주의의 위험성을 지적한다. 김교수는 명성교회 사건과 관련 교단헌법에 명시된 개교회의 자유보다 교단의 집단성의 독재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특정 집단이 개교회의 권한에 앞으로 일일이 간섭하고 개입하는 문이 활짝 열리게 된다. 그것은 장로교 통합의 정치원리에 반(反)하는 것이다. 이런 종류의 집단주의가 보편화되면 조지 오웰(George Orwell)의 소설 『1984년』에 묘사된 국가처럼 될 수 있으므로 우리는 경계해야 한다. 특히 현재의 대한민국처럼 '집단'이 '개인'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되어버린 국가에서 집단주의는 더욱 더 위험하다. 이처럼 명성교회 문제는 상당히 중요한 정치철학적 함의(implication)를 갖고 있다. 이 문제를 단순히 '정의와 불의,' 혹은 '선과 악'의 문제로 보는 사람들은 '철학적, 정치적 문맹'일 가능성이 높다.

 

공익의 이름으로 자유를 제한해서는 안돼

 

김교수는 공익의 이름으로 교회의 자유를 제한해서는 안된다고 말하고 있다.

 

다양한 자유민주주의 제도들을 가장 먼저 우리나라에 도입한 자랑스러운 역사를 갖고 있다. 그 자랑스러운 역사는 개교회주의 원칙을 만들어낸 종교 개혁가들 덕분이지, 공공신학자들 덕분이 아니다. 교회의 공공성이 최상의 가치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공공성'의 명분으로 개교회의 배타적 권리를 무분별하게 침해하고 있다. 집단이 개인에게 불법적 린치를 가하는 것과 사실 다름이 없다. 개교회주의가 '교회의 공공성'에 종속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공익의 이름으로 자유를 제한하려고 한다.

 

이러한 개별적인 자유를 기본권을 침해하면서까지 교단이나 국가가 이를 제어할수 없는 것이다.

 

미국의 수정헌법

 

그래서 청교도들이 미국에서 국가 수정헌법을 만들 때 제일 먼저 국가가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지 못하도록 종교분리원칙을 만들었던 것이다. 1789년 수정헌법 1조는 자유로운 신앙행위를 금지하는 법을 제정해서는 안된다고 하여 교회의 자유를 중시했다. 

 

연방 의회는 국교를 정하거나 자유로운 신앙 행위를 금지하는 법률을 제정할 수 없다. 또한 언론, 출판의 자유와 국민이 평화로이 집회할 수 있는 권리와 불만 사항을 해결하기 위하여 정부에게 청원할 수 있는 권리를 제한하는 법률을 제정할 수 없다.

 

Amendment I
Congress shall make no law respecting an establishment of religion, or prohibiting the free exercise thereof; or abridging the freedom of speech, or of the press; or the right of the people peaceably to assemble, and to petition the government for a redress of grievances.

 

미국장로교 헌법

  

같은 해 1789년 미국장로교회도 개인양심의 자유, 교회의 자유를 장로교원리로서 헌법조항에 제일 먼저 포함시켰던 것이다. 미국의 민주주의는 집단의 자유가 아니라 개인과 개교회의 자유를 강조한다. 그러나 막시즘은 개인의 권리나 인권보다 민중들의 집단적인 결의를 중시한다. 개인의 권리보다 노동자의 계급을 중시한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항시 단체로 그들의 권리를 주장하여 노동운동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개인의 권리와 집단의 결의

 

북한은 개인의 권리보다 당의 집단적인 결의를 중시한다. 그래서 막시즘에 대해서 논문을 쓴 조국 전 법무장관도 민중들의 결의를 중시한 나머지 법사멸론을 주장했던 것이다. 법이라는 것은 인간개개인의 권리를 중시한다. 그러나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는 개인의 권리보다 단체의 결의를 중시하고 있다.

 

불행하게도 예장통합교단이 개인의 권리, 개인의 기본권, 개교회의 자유보다 집단의 결의, 집단의 독재를 따라가고 있다. 김철홍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을 맺는다.

 

만약 그들의 말대로 하면 앞으로 개교회의 독립성, 자유와 권리, 자율성은 폐기되고, 통합 교단은 특정 집단이 온 교회를 '감독하는' 요상한 교단이 될 것이다. 교회의 공공성이 최고의 가치도 아니고, 개교회주의에 우선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자유가 공익보다 더 중요한 가치이기 때문이고, 개교회주의는 수백 년 동안 유지되어온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존재 방식이기 때문이다. 교단의 지도자로 자처하는 분들이 부디 이 점을 다시 한 번 깊이 고민해주길 부탁드린다.  

 

집단의 결의로 개교회의 자유를 침해 

 

현재 대한예수교장로회는 일부 교수들과 총대들,대형교회 목사들, 세반연 등이 사회주의나 전체주의 사회처럼 단체의 공공성을 명분으로 5만명이상 되는 교인 개개인의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 집단성을 중시하는 것은 전체주의 사회나 사회주의 사회에서나 가능하다. 공산국가는 당과 계급이라는 단체를 중시하지만 서구 민주주의는 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중시한다. 

 

그러므로 이제는 교단이 종교개혁의 정신, 장로교의 정체성, 민주주의의 자유와 개인의 권리를 토대로 더이상 개교회의 자유를 침해하는 집단 독재가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이는 개인의 권리보다 공공성을 빌미로 한 집단의 결의를 중시하는 것으로 사회주의나 전체주의 사회에서나 가능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104회 총대들이 교단헌법에 명시한 대로 집단의 결의보다 개교회의 자유를 선택했다. 서울동남노회 역시 교회의 자유를 중시하는 총회의 결의를 집행했다. 더는 개인의 권리와 개교회의 자유가 침해되는 사회주의식 집단결의에 편승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김철홍교수의 글이 늦었지만 개인의 권리와 개교회의 자유를 중시하는 많은 시사점을 제공해 준다.      

 

 

 

 

편집인의 다른기사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band naver URL복사
URL 복사
x

PC버전 맨위로 갱신

Copyright ⓒ 기독공보.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