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 동생 없는 전태일 기념관

겉으로는 전태일정신 속으로는 기득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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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
기사입력 2019-11-22 [17:26]

 

▲     © 편집인



2019. 11.13. 남양주 전태일묘소에서 전태일의 49주기 추모식이 있었다. 이 자리에는 정의당의 심상정 대표까지 참석했다. 모두 전태일의 정신을 기리기위해서 였다. 전태일은 알다시피 노동운동의 선구자이고, 1970년 열악한 노동환경을 "근로기준법을 지키라"며 그의 몸을 불살라 분신을 하여 당시 노동운동의 촉발을 알리고 이로 인해 전국에 노조가 설립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전태일은 하루에 일당 50원씩 받고 16시간 동안 일을 했고, 노조환경의 열악성을 몸을 통하여 세상에 외쳤다. 전태일의 마지막 외침을 보자.

 

 

박원순 서울시장도 전태열열사 기념관까지 세우도록 많은 도움을 주었고, 급기야는 재단까지 세워지게 되었다. 이수호 법인 이사장은 다음과 같이 인사말을 하였다.  

 

 

그러나 전태일의 동생 전태삼은 재단이 전태일의 정신을 잊어버렸고,  “전태일 형이 숨진 지 49년 만에 처음으로 만들어졌다” 는 식으로 말해, 그 이전에 전태일기념사업회를 만들기 위한 노동자들의 피담어린 투쟁을 모두 삭제하고 본인들이 처음 만든 것처럼 공을 가로챘다고 했다. 전태삼은 추모사를 발표하다가 재단측으로부터 제지 당하였다.  심상정 대표는 보고만 있었다.  전태일 동생없는 전태일 정신 기리기였다.   

그 결과 전태일 사건 당시 어용 일색이었던 노동조합이 70년대 민주노조를 거쳐 87년 노동자대투쟁을 통해 전국단위의 자주적인 노동조합이 건설되었습니다. 또한 노동자를 기반으로 하는 정당도 출현했습니다. 이것은 이 땅의 노동자들이 단결된 투쟁을 통해 노동해방, 인간해방을 실현하고자 하는 전태일 정신을 계승하려는 확고한 의지로 실천한 결과입니다. 따라서 노동자로서 노예의 삶을 거부하고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모든 사람은 전태일이요 단결된 투쟁으로 억압과 착취를 물리치고 평등세상을 건설하고자 하는 곳이 전태일을 기념하는 기념공간입니다.

 

그런데 지난 49년 전태일 이후의 역사가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최근 관제 전태일기념관을 두고, “전태일 형이 숨진 지 49년 만에 처음으로 만들어졌다” 또는 "이 시설은 국내 첫 전태일기념관으로 분신 장소인 평화시장 근처 청계천 수표교 인근에 자리를 잡았다“는 등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전태일재단 이사장은 지난 49년 동안의 노동자투쟁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떻게든 전태일을 기념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자고 구체적인 실행을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주체역량 문제도 있었지만 그것보다 정치적 이념문제가 컸다. 보수진영과 재벌이 반대했다. 노동자와 시민의 소액후원을 받았다. 그렇게 해서 겨우 전태일기념사업회로, 전태일재단으로 발전했다.

 

이것은 사실과 다른 내용이기도 하거니와 그동안 노동자의 지난한 투쟁을 무시하고 지우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의심됩니다. 특히 전태일 형이 직접 투쟁했고, 이소선 어머니가 형의 유언을 실천하기 위해 조직된 청계피복노동자들의 피어린 투쟁을 완전히 묵살하는 발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무리 주체역량이 부족하기로서니 전태일기념관을 보수진영과 재벌이 반대한다고 만들지 못하고 찬성을 구해야 만들 수 있다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겨우 전태일기념사업회로, 전태일재단으로 발전했다고 하지만 이것 역시 군부독재 아래에서 피어린 투쟁을 통해 쟁취해낸 노동자들의 소중한 성과물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의 역사적 사실을 무시한 채 지금 와서 그것이 비록 초라하게 보일지 몰라도 ‘겨우’라고 폄하해 버리는 것에 비애를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자 재단에 반대하는 일부 노동자들이 전태일기념관 앞에서 재단측에 항의를 하였다.  

 

 

재단측을 비판하는 이춘길은 민주화를 외쳤던 사람들이 결국 기득권의 자리에 서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4, 19 직후, 혁명정신을 기리는 단체가 많이 생겼다. 20 년 지난 뒤, 빛고을서 또 다시, 수많은 5, 18 관련 단체들이 태어났다.  그러나, 온전한 민주화 세력은 범죄정권의 요주의 관리대상이었다.

 

민주화를 향상시키겠다는 사명감으로 조직된 대다수 단체가 정권의 통제와 관리에 의해, 민중의 영혼을 상품처럼 파는 껍데기들의 장악하에 놓여지게 된다.  민주화 제단에 바쳐진 희생정신은, 잔 재주꾼들의 허물이 철철 넘쳐나는 사익 추구의 직장으로 변질된 채, 제도권(국가, 자치단체 재정) 까지 욕보이는 몰염치한 역사를 여전히 신기록처럼 써 나가고 있다.            

                      

11/13 일 성지 모란공원서 재단의 주류가 보여준 행위는 가히 충격적이다. 척박한 이 땅에서 노동이 얼마나 당당한 행위인지, 도도한 자긍심을 유산으로 남겨준, ''나의 나인 전태일 열사'' 의 정신이 몹시 심한 상처를 입은 날로 기록한다.  전태일재단은 정관에 의해, 운영위원회, 이사회, 총회로 구성되어 있다!
 
49 주기 추도식장에서 폭언과 폭거를 실행한 자들 외, 이사장과 다수 간부들이 더 큰 책임을 져야만하는 단체의 문제다. 재단에서는 수많은 노동자 (전태일) 앞에 납득할만한 조치를 시급히 결의하시길! 

 

그날 읽은 유인물 내용이 재단의 다수 간부들에겐 불쾌한 발언이 명명백백 하나, 설령, 허위사실을 공개 발언하더라도, 발언중 강제적인 물리력으로 막지 말아야 했다.
 
옳고 그른 비교평가는 수많은 노동자들 몫으로 남기면 될  만큼만, 이의를 제기하였기에!  책임소재, 사실확인, 시비를 가릴 필요조차 없다고 말하겠다. 범죄수준의 윤리기준을 공개장소에서 실행에 옮긴 만용에 놀랬고, 마무리  솜씨에 입을 닫을수 없다. 어떤, 무엇에, 급하게 쫒기 고 있었다는 직감이 왔다. 

 

민종덕은 "전태삼씨의 이런 행동을 불편해 하는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전태삼씨를 미친놈 취급하면서 따돌림 하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모든면에서 완벽할 수는 없다 전태삼 씨도 약점이 있고 부족한 점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약점이나 부족한 점만 강조하면서 그 사람 전체를 매도하려는 것은 비열하고 비겁한 행동이다." 고 재단측을 비판했다.

 

한 추모객도 재단측을 비판했다.

 

ㅡ전태일 추모제에서 발생한 일ㅡ

 

어제 마석 모란공원 49주기 전태일열사 추모제가 진행되는 동안 목도하게된 충격적인 광경에 대해 있는 그대로 쓰고자 한다.

 

추모제에서 유족대표로 인사말을 전하는 전태일열사의 동생이신 전태삼선생님이 추모제에서 유족대표로 인사말을 전하며 마지막 두어 단락만을 남기고 차분히 발언을 이어 가던중 발생한 일이다.

 

어떤 남성이 무대 앞쪽으로 나가더니 갑자기 마이크를 폭력적으로 나꿔채서 뺏어던지고는, 다시 마이크대를 발로 걷어 차서 나동그라지게하는 있을 수없는 경악할 폭력을 300여 추모제 참석자들이 모두 지켜보는 가운데 휘둘렀다.

 

폭력이 진행되던 중에 서로 싸인이 전달된 듯 또다른 대기중인 젊은 남성이 곧바로 전태삼선생님을 뒤에서 콱 붙잡고 들어올려 강제로 끌고 나가는 만행을 저질렀다. 유족의 발언을 귀기울여 듣고 있던 나로서는 이 일련의 사태가 각본이 짜맞춰진 듯이 순식간에 일어난, 너무도 충격적인 상황이었다.

 

유족이 자신의 친형의 추모제에서조차 쫒겨나가는 이 주객이 전도된 야만적인 상황이 동영상에 그대로 담겨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유족인사를 폭력적으로 중단시키고도, 추모제 사회자나 전태일재단 측은 마치 아무일도 발생하지 않았다는 듯이, 아무런 사과의 발언이나 해명도 없었고, 이 이상한 추모(?)제는 그저 다람쥐 쳇바퀴돌듯 눈앞의 불의를 보고도 체념하듯 각본대로 순응하는 헛된 의례에 불과했다.

 

전태일열사의 동생이신 전태삼선생은 이때받은 충격과 어지럼증 및 가슴이 답답한 증상으로 국립의료원의 응급실에서 CT촬영과 가슴 영상사진을 찍고 링겔주사를 맞고 누워계시기까지 했다.

 

공교롭게도 국립의료원 응급실은 형 전태일이 분신 후 누워계시다가 임종하신 장소다. 응급실에 누워 말씀하시는 형 전태일을 그리워하는 동영상을 보니 가슴이 너무도 아프다..아프다..

 

전태일 정신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아무 의미도 감동도 없는 추모제 행사를 통해 시민들이 무엇을 얻고 깨달을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추모제에서 목도하게된, 이 조직폭력배만도 못한 사태에 경악하며, 이것을 보고도 더이상 방관하는 것은 죄악이라 생각한다.

 

전태일재단은 전태삼선생께 유족대표로 인사말을 부탁해놓고도 예정된 인사를 폭력적으로 중단시킨 만행을 해명하고 사과해야한다! 민주촛불시민들은 유족 전태삼선생으로부터 역사적 증언을 듣기 원하며, 그분이 당한 폭력과 모욕과 멸시와 천대는 전태일 형보다 불과 두살 아래인 70대의 전태삼선생이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었으며, 전태일 재단측의 처신은 비단 전태삼선생만이 아니라 추모제 참가자들까지도 멸시하고 천대하는 행위와 다름없음에 비통함을 금치 못한다.

 

이래가지고 과연 전태일재단이 주관하는 추모제행사를 앞으로도 계속 참석할 수 있을까? 그 주객이 전도되어 폭력이 난무하는 추모제에서 내가 과연 전태일정신을 찾을 수 있을까?

 

이수호이사장은 뉴스공장 김어준씨와의 인터뷰에서 전태일기념관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전태일기념관은 설립되었지만 가족들은 기념관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전태일기념관은 전태일과 상관없는 사람들이 전태일의 정신을 기념한다고 하면서 차지하고 있었다. 전태삼은 2018년도에도 어머니 이소선여사의 책출판에 대하여 "전태일재단은 더 이상 이소선 어머니를 능멸하지 말라" 재단측을 비판한 적이 있었다.

 
전태일재단은 더 이상 이소선 어머니를 능멸하지 말라.

 

이소선 어머니는 개인적으로는 나의 어머니이며 사회적으로는 노동자의 어머니라는 별칭이 붙은 분이다.
이런 어머니를 다른 곳도 아닌 전태일재단에서 능멸하고 있다.


전태일재단은 2014년 2월부터 전 전태일기념사업회 민종덕 상임이사가 <이소선 – 평전>을 인터넷 신문에 연재하기 시작하자 곧바로 언론사에 연재를 중단하라는 압력을 넣었다. 뿐만 아니라 타당한 이유도 없이 필자인 민종덕한테는 집필 중단을 요구했다.


이어 전태일재단은 거액을 들여 작가를 선정해 이른바 이소선 어머니 전기를 쓰게 했다.


나는 언론 출판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민주주의에서 누구든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시비는 하지 않았다. 다만 전태일재단에서 추진하는 이소선 어머니 전기 집필의 목적이 이소선 어머니의 삶을 의미 있게 기록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특정인의 집필을 방해하기 위한 것으로 읽혀져서 이에 대해 비판을 했다.


아니나 다를까 전태일재단에서 선정한 작가는 계약금을 돌려주며 집필을 할 수 없다고 포기했다.
한편, 전태일재단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민종덕은 <노동자의 어머니 – 이소선 평전>의 집필을 마치고 2016년 이소선 어머니 5주기를 맞이하여 출판까지 마쳤다.


민종덕은 책을 출판하기에 앞서 공개적으로 사실 확인 절차를 거쳐서 합법적으로 공신력 있는 출판사에서 출판을 했다.


 <노동자의 어머니 – 이소선 평전>이 출판되자 전태일재단의 몰상식한 행태는 도를 넘었다. 출판사에 이미 출판된 책을 폐간하라고 압력을 넣는가 하면, 북콘서트를 주최하는 단체에 압력을 넣어 행사를 무산시키기도 했다. 전태일재단의 이러한 무례에 항의하자 전태일재단 이수호 이사장은 그런 행동이 전일재단의 ‘책임’이라고까지 했다.


전태일재단의 몰상식한 행동은 여기에서 그친 것이 아니었다. 이미 집필을 포기한 작가한테 다시 집필을 요구해 그 작가는 다시 집필에 들어갔다. 작가는 2017년 년 말 또는 2018년 초에 이소선 어머니 전기 초고를 완성했고 한다.


초고가 완성되면 그 초고를 윤독해 팩트를 체크하는 등의 절차를 밟기로 했다. 그러나 이 초고가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이소선 전기 발간위원 중 한 사람인 나한테만 그 초고를 비밀에 부치고 자기들끼리만 읽은 것이다.


이른바 이소선 어머니 전기 발간위원은 다음과 같다. 위원장 장기표, 위원 이수호, 박계현, 최종인, 임현재, 이승철, 전순옥, 전태삼 등이다.


나는 발간위원이기도 하지만 이소선 어머니의 장남이다. 그런데 이들은 나만 쏙 빼고 자기들끼리만 초고를 본 것이다. 내가 초고를 보여 달라고 요청하면 이리저리 미루기만 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친 것이 아니다.


이미 초고까지 집필을 마쳤음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다시 집필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하고 받은 돈 3,000만원을 재단 측에 돌려주었다. 이에 재단 측은 발간위원 중 한사람이 다시 쓰기로 했다는 것이다. 다시 쓰기로 한 사람은 고 김윤환을 비롯 홍사덕, 한광옥, 김문수 등과 정치하는 정치인이다. 이렇게 되면 세상 사람들의 웃음꺼리가 될 수가 있다. 그래서 그런지 모르지만 요즘에는 집단 창작을 한다는 얘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어떤 연유로 거액을 받기로 하고 초고까지 마친 작가가 집필 포기를 했는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미뤄 짐작컨대 작가한테 얼마나 터무니없고 황당한 (사실 왜곡)요구를 했기에 그런 결정을 했을까싶다.


집필 포기의 연유야 어찌되었든 그동안의 경위가 이렇게 된 것은 이소선 어머니의 삶까지도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이용하겠다는 불순한 욕망의 이용물로 여겼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없다.


전태일재단은 더 이상 이소선 어머니를 능멸하지 말라. 이소선 어머니의 삶이 당신들 몇몇이 맘데로 주물럭거려도 되는 하찮은 삶이 아니다.

 

                                      2018년 9월 3일


                               이소선 어머니 7주기를 맞이하여 
                                                                                  아들 전태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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