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세습파동은 김수원목사의 원맨쇼

김수원의 불법으로 시작해서 김수원의 노회장승계로 막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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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
기사입력 2019-11-29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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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교회 사태가 지난 2년 동안 온 장안을 들썩거리게 하였지만 이제는 거의 끝났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국 김수원노회장, 김하나 2021년 위임목사컴백으로 끝이 났다.  결국 김수원목사의 원맨쇼로 결론을 맺게 되었다.

 

명성교회사태는 김수원목사가 처음부터 김하나목사청빙건의 헌의안을 거부하지 말고, 본인이 노회장이 된 후 노회에서 가부문제를 해결하면 되었다. 이의가 있다면 총회재판국에서 해결하면 2년 동안 온국가가 명성교회건으로 난리를 치지 않았을 것이다. 여기에 김수원목사는 교단내부의 건을 외부로 가져간 것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 한다.

 

세반연, 뉴스앤조이, CBS, 장신대교수들, 평화나무 등을 끌여들여 반기독교적인 정서를 높이는데 일등공신을 하였다.  본인이 노회장을 수용하고, 본회에서 명성교회건을 처리하면 되었다. 만일 원하는대로 처리되지 않으면 교단재판국에 소송을 하면 되었다. 

 

그러나 불법으로 헌의위원장의 직권을 남용하여 서류를 반려하고 장외투쟁을 함으로 사태는 일파만파 퍼졌다. 온 국가가 난리였다. JTBC, MBC까지 달려들어 수십편의 방송을 내보내 그야말로 명성교회는 만신창이되고 엄청난 시련을 감내해야 했다. 전국이 명성교회와 김삼환목사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교단의 총대들은 총회장과 재판국장이 누구냐에 따라 춤을 추었다. 최기학 총회장 때는 그의 태도대로 반명성의 정서가 무르익으면서, 림형석총회장 때는 최고조로 극을 이루었다. 이는 두 전직총회장들의 반명성의 정서 때문이다.  104회 김태영총회장은 어떻게 해서든지 명성사건을 매듭짓고자 총대들의 결의를 얻어 수습위원회를 만들어 매듭을 지었다.

 

결국 김수원 목사 노회장, 김하나목사 위임목사 승인이었다. 장창만목사는 이미 103회 총회시 수습위를 맞들어 해결하자고 했으니 대다수가 반대했고, 104회 때는 수습위를 만들자고 대댜수 총대들이 찬성을 했다. 

 

상황에 따라, 누가 발언하는에 따라, 재판국장, 총회장이 누구냐에 따라 명성교회건은 럭비공처럼 향방을 측정하기 어려웠다. 결국 김태영총회장이 해결했다. 102회 총회재판국의 결정대로 김수원목사는 노회장 승계, 김하나목사의 위임목사청빙유효를 인정하자는 것이었다. 

 

104회 총회수습위는 이미 102회 총회재판국의 결정을 그대로 용인하는 것이었다. 양측 모두 불편하지만 그러나 이미 총회재판국의 결정대로 따를 수 밖에 없었다. 수습위 역시 103회시 장창만목사의 건의가 있었다. 결국 102회 재판국의 결정과 103회 총회시 장목사의 건의 대로 이루어진 것이다.

 

김삼환목사도 김수원목사를 노회장을 시켜야 한다는 입장이었고, 재판에 지든 이기든 총회의 결정에 따라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결론은 김삼환목사의 말과 102회 총회재판국의 결정 대로 김수원목사는 노회장이 되었고, 103회 장창만목사의 건의대로 총회수습위가 결정되었고, 102회 총회재판국의 결정대로 김하나목사가 위임목사로 인준되었다. 이미 앞서 결정된 것들이다. 

 

그러나 지난 2년 동안 명성교회는 철두철미하게 찢겨졌고 난타당했고, 김삼환목사의 명예는 실추되었고, 명성교회는 맘모니즘, 신사참배교회의 상징이 되었고, 김하나목사는 한국의 종교 기득권자의 전례가 되었다.

 

장창만목사의 건의가 묵살되고, 채영남 수습위원장, 최기학, 림형석, 김태영 총회장은 양측으로부터 비난의 화살이 퍼부어졌지만 104회 수습위로 인해서 명성교회건은 일단락되게 되었다.

 

김수원목사의 원맨쇼로 인해서 교단과 학교, 국가까지 난리 법석이었다. 김수원목사가 노회장이 되고 나서 김수원목사는 명성교회에 대해서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총회에 대해서 항명하는 것도 부담이었다.  

 

김목사가 노회장이 되고 나니 명성교회건에 대해서 더이상 투쟁을 하지 않게 되었다. 결국 노회장때문에 명성을 반대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게 되었다. 

 

김수원목사의 한 측근은 자신들과 협의 없이 개인이 노회장직을 수용한 것에 대해 개인의 입장을 존중해야 한다고 했다. 결국 반명성측은 닭쫏던 개 지붕만 쳐다보게 되었다.

 

김수원목사가 신념과 철학이 있다면 노회장직을 수락하지 않고 끝까지 반명성 투쟁을 해야 했다. 노회장이 된 이후 투쟁을 하지 않는 것은 결국 보직때문이라는 비판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애초에 명성교회 김삼환목사는 처음부터 김수원목사를 노회장을 시키라고 한 바 있었다. 그러나 명성교회장로들이 김수원목사를 노회장 시키는데 반발을 하였고, 김수원목사는 헌의위원장으로서 경유하지 않고 자신이 명성교회의 위임목사청빙건을 거부함으로 인해 일이 확산되었던 것이다. 즉 그의 불법이 일의 확산을 가져왔고, 일의 확산은 자신의 노회장승계로 인해 결말을 맺게 되었다.

 

결국 모든 것의 귀책사유는 김수원목사에게 있다. 그러므로 김수원 빠진 반세습운동은 맥이 빠지고 말았다. 최근에 평화나무, 장신대에서의 세습반대집회는 한풀 꺽인 집회였다.

 

김수원 목사가 노회장이 되었기 때문에 노골적으로 반대할 수 없게 되었다. 타협안의 조건이 명성교회에 대해서 부정적이거나 불이익을 주어서는 안된다고 서명을 했기 때문이다.

 

그는 세습반대투쟁을 위하여 세반연, 반기독교적인 언론과 세력등과 연대를 하고 강연, 선동, 투쟁, 금식도 한 바 있지만 노회장이 된 후, 침묵을 하게 되었다.  

 

결국 김수원이 떠들면서 세습반대투쟁이 활활 타오르게 되었지만 김수원목사가 노회장에 등극함으로인해 세습반대운동은 힘을 잃게 되었다. 남보원이 아니라 김수원목사의 원맨쇼로 끝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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