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신앙유산답사기 (여수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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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10-19 [22:10]

세상에는 두개의 영이 있었다. 하나는 살리는 예수의 영이고 다른 하나는 죽이는 이념의 영이 있었다.

 

최근에도 교회를 살리는 예수의 영이 있고 교회를 파괴하는 이념의 영이 있다. 

 

뉴스앤조이나 CBS, 세반연처럼 이념의 영이 있는 곳은 윤리와 개혁을 빌미로 교회를 파괴하는데 앞장을 서고, 예수의 영이 있는 곳은 약간의 하자가 있어도 가능하면 장점을 보고 교회를 살리는데 앞장을 서고 있다. 

 

당시 여수에도 마찬가지였다. 이념의 영이 깃든 곳은 목사와 자녀들까지 죽이는데 앞장을 서지만 예수의 영이 있는 곳에는 나환자와 원수까지도 살리는데 앞장을 섰다.  

 

여수지역의 사건을 보면 그리스도의 영이 깃든 곳은 나환자를 위한 병원을 만들어 수많은 나환자들을 치료해주었지만 이념의 영이 들어온 곳은 좌익이나 우익이나 모두 사람들을 적으로 판단, 민간인들까지도 닥치는 대로 살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수는 이념의 문제로 많은 사람들이 억울하게 죽어간 곳이다. 지금도 특정 교회에서는 좌익과 우익들의 자손들이 있기 때문에 양측이 치유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양측 입장이 다르기 때문에 여순사건의 기념관하나 세우지 못하는 실정이다.

 

모두 이념의 영이 판을 치기 때문이다. 이념의 영은 지금도 우리 사회를 맴돌고 있고, 약간의 윤리적 단점만 있어도 개혁과 진보를 빌미로 교회를 파괴하는데 앞장을 서고 있다.

 

그러면서 동성애는 지지하는 반성경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특히 막스레닌주의와 좌파는 유물론을 지지하기 때문에 유신론을 지향하는 기독교와는 적대적인 관계에 있다. 그래서 좌파의 이념이나 좌파적 영을 가진  정부나 언론은 대체적으로 반기독교적, 반교회적, 반성경적으로 나아가 교회를 파괴하는데 앞장을 서고 있다.  

 

1920년대에도 이미 막스레닌주의, 볼세비키즘이 한국에 상륙하여 중국과 러시아에서는 고려공산당을 만들고, 1925년 조선에서는 조선공산당을 만들어 볼세비키즘을 온 세상에 퍼뜨린다. 6.25가 발생하기 전에 북한은 막스레닌주의로 이미 물들었고 남한도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사회주의가 싹트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미 좌파적 이념은 1948년 전국을 휩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섬마다 좌익사상이 들어가 문준경전도사, 영광의 야월교회, 염산교회는 막스레닌주의에 힘입은 좌익들에 의하여 집단적 학살극이 발생했던 곳이다. 

 

  영광. 염산교회

 

 

  야월교회

 

또한 신앙보다 이념에 물든 서북청년단들에게도 학살의 영이 같이 따라 다녔던 것이다. 이들은 제주에서 수많은 민간인들을 학살하는데 앞장을 서기도 했다. 우익의 이름으로 민간인을 살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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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익도 우익을 학살하였다. 이도종 목사가 대표적인 케이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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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종 목사는 1948년 6월 순회 예배를 드리기 위해 고산에서 대정으로 가던 중 숨어있던 무장대원들에게 끌려가게 되었다. 이 목사는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기독교 목사요”하고 자신에 대해 설명했는데 이에 무장대는 “자신들이 이길 수 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면 살려주겠다”고 했다.

 

그러자 이 목사는 “나는 이쪽 편도, 저쪽 편도 아닌 하나님 편이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인정하지 않고, 무고한 사람들을 살해하는 당신들을 위해 기도할 수 없소!”라고 답하였고 무장대에 의해 심한 구타를 당한 뒤 생매장되어 58세에 순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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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을 통하여 사단이 역사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사단적 이념은 예수의 영보다 앞서서 여전히  반대파들을 혐오하거나 죽이는데 앞장서고 있다. 불행하게도 기독교 사회주의의 영이 복음적 기독교를 앞서서 기독교의 본질을 훼파하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1920년대에 있었던 것들이다. 따라서 본질을 추구하는 기독교는 이제 CBS와 뉴스앤조이와 같은 기독교 사회주의를 구사하는 반기독교적 반성경적 언론과 맞서서 싸워야 할 것이다.    

 

예수의 영과 이념의 영

 

여수도 순천과 함께 14연대 군인들의 여순반란사건이 있는 도시로서  서로 죽이는 이념의 영 있는 곳이기도 하지만 나환자까지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살리는 예수의 영이 있는 곳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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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살리는 영은 예수의 영이다. 예수의 영은 여수의 영이기도 하다. 여수에서 사람을 살리는 곳으로서 가장 의미있는 곳은 애양원이다. 원래 나병환자를 위한 병원은 1911년 4월 25일 광주에 월슨(우월순 선교사)에 의하여 세워졌다.

 

그러나 광주의 나병원은  1925년 현 여수시 율촌면 신풍리 1번지에 터를 마련하고, 1928년 한센병자 600여 명이 옮겨와 지금의 애양원을 이루게 되었다. 이어 1936년 여수 애양원으로 명칭을 바꾸면서 여수 애양원 시대를 열게 된다. 

 

 

 

당사의 나병환자들은 오갈 데가 없이 버려진 상태였다. 그들은 심지어 가족으로부터도 외면을 당할 정도로 희망과 소망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이들을 병원에서 치료하게된 계기가 있었다. 미국선교사들이 이들에 대한 심각성을 알고 병원을 세우게 된 뒤부터 였다.

 

미국선교사들은 복음을 전달하고 학교를 세운 공로도 있었지만 애양원이라는 나병환자들을 위한 병원을 세운 것이다. 나병환자들을 한방이나 침으로 치료하기는 역부족이었다. 

 

민비의 조카 민영익이 일제 자객들에 의한 칼에 맞아 심한부상을 당해 한의사들 12명이 지혈을 하려고 침치료를 하는 등 별의 별 방법을 다했지만 흘러나오는 피를 지혈시킬 수가 없었다. 

 

1884년 갑신정변으로 크게 다친 민영익(1860∼1914)은 미국 공사관 소속 의료선교사 호러스 알렌의 치료로 생명을 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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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 마침 한국에 당도했던 알렌이 지혈제를 사용하고 실로 꿰메어 피를 멈추게 한 것이 조선에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되었다. 나병환자들 역시 당시 조선의 의료기술을 갖고서는 허준이나 유의태같은 조선 최고 어의라할지라도 치료하는데는 한계가 있었다.

 

  허준

 

감사하게도 서구의 의사들이 나병을 치료하고 또 예방하기 위해 한국에 병원을 세운 것은 아프리카의 성자 슈바이처이상의 사역이었다. 나환자병원을 만들게 된 동인이 있었다.

 

1909년  몸을 돌보지 않고 유진벨과 함께 광주와 전남의 새장을 열어가던 의료선교사 오웬이 3월 22일 광주를 출발하여 화순, 남평을 지나 장흥에 도착해서 선교사역을 하던 중, 과로로 인해 급성 폐렴에 걸려 쓰러지게 된다. 장흥에서 광주까지 3일이 걸려서 왔다.

 

 오웬과 포사이드

하지만 포사이드가 목포에서 오자마자 오웬은 42살의 나이로 하늘의 부름을 받았다. 장례식은 4.6 양림동에서 드려졌고 프레스톤이 장례 예배를 집례했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헛되이지 않았다. 오웬은 호남신대에 있는 묘지에 최초로 안장되었다. 그의 선교사 친구인 유진벨 옆에 안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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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웬은 의료선교사로서 1904년 유진벨과 함께 광주로 가서 의료선교를 하여 광주 제중병원을 설립할 단초를 마련하기도 하였고 순천에서만 40여개를 비롯 전남에 교회를 100여개 이상 세우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는 200 명 이상되는 사람에게 세례를 베풀고, 430명의 학습교인을 세웠다.

 

그는 목포와 광주에 머문 11년 동안 광주 송정리 교회(1901), 해남 선두교회(1902), 완도 관산교회, 나주 방산교회(1905), 보성 무만교회,신천교회, 고흥 옥하교회(1906), 화순읍교회(1907), 보성운림교회, 광양읍교회(1908), 보성양동교회, 나주 내산교회 등을 설립했다. 그 이후 오웬의 기념관이 세워졌다. 

 

오웬 기념관

 

오웬의 죽음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은 오웬의 죽음으로 인해 포사이드가 나환자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당시 오웬의 폐렴을 치료하기 위해 목포에서 활동 중이던 포사이드는 급히 광주로 오게된다.

 

포사이드는 광주로 오던 중 나주 남평 부근에서 길가에 버려진 여자 한센병 환자를 발견하게 된다. 포사이드 선교사가 길에 쓰러진 나환자를 치료한데서 애양원의 설립 동기가 된다. 

 

손과 발은 이미 짓물러 있었고, 부은 몸으로 상처투성이인 몸에 걸친 누더기 옷은 이미 피와 오랜 고름으로 덕지덕지 얼룩이 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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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사이드는 입고 있었던 털옷을 나병(한센병)환자에게 입히고 자신의 말에 태워서 광주까지 데려와서 벽돌 굽던 가마굴에 임시로 나환자를 수용하고 격한 냄새와 피고름이 터져흐르는 손과 발을 만져가며 그 여인을 지극히 들봐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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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에서 군의관으로 경험을 쌓은 포사이드는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의료선교사로서 1904년 9월 25일 군산에 도착해서 전주예수병원에서 첫사역을 시작했다. 

 

그는 당시 무장 괴한들의 칼에 맞은 환자를 치료해주다가 본인도 괴한에게 습격을 당해 귀가 잘리고 측두골이 깨지는 심각한 부상을 당하게 된다. 그러나 포사이드는 전주에서 잡힌 괴한을 예수의 이름으로 용서해 준다. 처벌을 원하지 않았다. 

 

선교사가 문둥병환자를 치료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나환자들이 광주에 몰려들었다. 이에 선교사들은 광주 양림동에 세칸자리 초가집 한 채를 마련하고 환자 7명을 수용하고 1912년에 무등선 자락에 요양원 건물을 설립하였다. 이것이 한국 최초 한센병 전문 '광주나병원'의 출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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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봉선동에 한센 환자 시설이 처음으로 들어선 1909년 이래 전라남도와 경상남도 지방이 극심했다. 따뜻한 기후 탓이었다. 그런 이유로 기독교 선교기관들이 나라가 못 하는 한센 병자 돌보는 일까지 도맡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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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선교사들은 나환자들을 돌보는데 매진하였다. 호주 장로교가 부산 감만동에 상애원(相愛園)이라는 이름으로 500명을 수용했다.

  

 

  

부산에서 한센인 보호병원 감만동 상애원은 1910년 개원하였고 1912년 이래로 호주선교 부가 운영하던 의료 및 구호 시설이었다. 상애원에도 입소하기 위해 많은 나환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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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기독교는 사람을 살리는데 앞장을 섰던 것이다. 심지어 나환자들까지도. 대한민국을 사랑한 것은 서구의 선교사들이었지, 주위 중국이나 일본 사람들이 아니었다. 

 

오히려 중국은 수많은 외침을 해 여인과 아이들, 청년들을 잡아가고, 한반도를 피투성이로 만들었다. 특히 청군들이 한반도에 들어와 동학군들을 수만명을 학살하는데 앞장섰고, 1.4 후퇴 때 역시 공산주의의 이념에 매몰된 중국이 인해전술로 들어와 수많은 한인들이 학살되었고 많은 군인들이 포로가 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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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역사적으로 한국을 살리는데 장개석 정부이외에 도움을 준 적이 없었다. 오히려 이면적으로 좌파적 공산주의보다 자유경제와 민주주의를 채택한 서구 선교사들이 한국을 살리는데 앞장을 섰다. 한센병은 조선정부도 거들떠 보지 않았다.       

 

원래 나병(한센병)은 인간이 당하는 가장 고통스러운 병으로 가족으로부터 격리되고 의료혜택도 누릴 수 없어 이들이 당하는 정신적, 육체적 아픔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런 아픔을 안고 절망 속에 살아가는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일용할 양식과 의료혜택을 베푸는 일은 기독교 신앙에서만 가능한 사역이다. 미국의 선교사들은 최고의 엘리트로서 한국의 수만명의 한센환자들까지 치료해 주었던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우리는 미국선교사들에게 많은 빚을 지고있는 것이다.  

  

부산에 있는 상애원은 1912년 5월 제임스 노블 맥켄지( James Noble. Mackenzie 1865-1956 : 한국명 매견시 梅見施) 원장으로 취임하면서 이름이 지어지고 활성화 되었다.

 

당초 미국 북 장로교 어빈(Irvin)선교사에 의하여 감만동에 자리를 잡았다, 그 후1909년 부산지역이 호주장로회 선교구역으로 정해져 호주장로회 선교부로 이관되었다.

 

대구에는 미국 북장로교 선교회에서 450명의 나환자를 돌보고, 여수 순천에서는 미국 남장로교 선교부가 광주 봉선동에 운영했던 애양원(愛養園)을 1926년 설립하여 800명까지 돌보아 주었다. 
  
일제 총독부가 운영하는 소록도 한센 환자촌에도 250명이 입소해 있었다. 남장로교는 순천에 215 에이커(약 31만 평)를 사들여 재활촌으로 개발하기 시작했다. 광주에서 순천으로 이사 올 때 일본 총독부가 이주 비용 가운데 1만2500달러를 부담하기도 했다.

 

1924년, 광주 나환자병원의 환자의 수가 5백 명을 넘자, 이듬해 여수시 율촌면 신풍리 1번지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1928년에 이전을 완료했다. 

 

국내 최초이자 유일한 나환자 전문치료센터인 ‘여수애양원’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광주 나병원’, ‘비더울프 나병원‘ 등으로 불리던 병원의 이름도 1935년, 지금의 이름인 ’애양원‘으로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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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건물은 1926년 광주에서 여수로 병원을 옮길 때 지어진 병원 건물을 전시 시설로 개조한 것이다. 건물의 상단부가 약간 개조되기는 했지만 전체적인 골조는 원형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건물 자체만으로도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특히 지방에 있는 건물인데 반해 서양인에 의해 직접 지어진 건물이라는 점에서 더욱 큰 의의를 지니고 있다. 현재 문화재청으로부터 대한민국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33호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원래 윌슨은 광주제중원을 설립하여 봉사하였으나 포사이드가 나병환자를 데려온 것을 계기로 10여명의 나병환자를 치료함으로서 많은 나병환자들이 광주제중원에 모이기 시작하여 광주나환자 병원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어 1911. 4. 25, 윌슨에 의하여 광주나병원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1928년에 한센병환자들이 600여명이나 와서 지금의 애양원이 설립된 것이다. 전국에 나병환자 천지였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실상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병원을 통하여 새 삶을 얻고 치료를 받게 되었다. 푸른 눈의 선교사들은 예수처럼 값없이 봉사하면서 한국의 나환자들에게 소망을 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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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슨은 워싱톤대학에서 의학박사학위를 받고 1908년 남장로교 선교사를 지원하여 광주 제중원의 2대 원장으로 재직하였다. 그러다가 포사이트 선교사가 데려온 한센병환자를 계기로 오로지 한센병환자의 치료에 전념하게 된다. 그는 광주에 나환자 병원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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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오방 최홍정목사가 나환자병원을 위하여 자신의 땅 1,000평을 내놓기도 하였고 그는 나환자 치료에 많은 공헌을 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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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에서는 애양원을 설립하였고, 나병환자들을 위한 마을을 조성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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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윌슨은 나병환자의 아버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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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환자들이 처음에 병원을 찾아왔을 때의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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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선교사들은 나병환자들을 위하여 의족을 만들어주기도 하고, 썩어가는 부위를 수술해주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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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명되어가는 나환자들의 눈을 치료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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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각한 화상을 입은 환자를 치료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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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들은 이렇게 많은 나환자들을 치료하여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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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예수의 정신을 갖고 혼신의 힘을 다하여 나환자들을 치료하여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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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의 의료시설은 선교사들이 미국에서 자신들의 헌금으로 사들여온 의료기구들이었다. 오직 한국민을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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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들은 다리가 잘려나간 사람들을 위하여 의족까지 만들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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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예수의 영이 들어간 사람들은 심지어 나환자라도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데 앞장을 섰다. 그러나 이념이 신앙이 된 사람들은 죽이는데 희열을 느꼈던 것이다. 우익이든 좌익이든 사람을 죽이는 것이 그들의 목표였다. 예수없는 이념은 좌우익을 떠나서 결국 사람을 죽이는데까지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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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윤리적 원칙과 진보적 기준을 명분으로 대형교회를 파괴하는데 앞장서는 뉴스앤조이나 CBS, 이단감별사, 세반연들은 예수의 정신이 없기 때문에 윤리와 개혁을 명분으로 자신들이 아니면 한국교회를 죽이는데 희열을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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