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 영 vs. 예수의 영

러시아 10월 혁명 이후 3개월 후에 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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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11-03 [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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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사회를 휩쓸고 있는 이념의 영에 대한 역사를 살펴볼 필요성이 있습니다. 한국사회에 1885년 미국선교사들에 의해 복음이 들어와 1920년대에 들어서 전국에 많은 교회가 세워져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주의라는 이념의 영이 몰래 들어와 한국사회를 요동치게 했고 결국 분단이라는 가슴아픈 사건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해방은 또다른 분단을 가져왔던 것입니다. 러시아와 중국과 근거리에 있는 한반도에 3.1운동이후에 러시아에서 비롯된 공산주의가 새로운 대안으로서 자리 잡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항일운동으로 가려있었던 공산주의가 해방이후 본색을 드러내  적극적으로 활동하여 한반도를 좌익으로 물들게 했습니다.

 

폭력과 죽음, 살상을 좋아했던 공산주의 이념을 극복하는 길은 예수의 영이 지배하는 사회를 만드는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의 영이 지배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알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한반도의 공산주의 역사를 바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할 때입니다. 

 

미국이 일본에 대항하기 위하여 러시아를 끌어들일 때부터 분단은 각오해야 했습니다. 분단은 우리에게 또다른 시련이었고 분단의 현실로 인해 엄청난 국방비를 낭비해야 했습니다. 

 

결국 사단이 역사하는 사회주의의 영은 북한을 장악했고, 예수의 영은 남한에서 역사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사회주의 영이 끊임없이 예수의 영을  장악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중국과 러시아를 통하여는 사회주의 영이 들어와고 미국과 서구를 통해서는 예수의 영이 들어왔습니다.  사회주의 영은 사람을 죽이는데 앞장섰고, 예수의 영은 사람을 살리는데 앞장을 섰습니다.

 

사회주의 영이 들어와 6.25를 통하여 남북한 통틀어서 약 200만명이 죽었습니다. 사회주의 영에 깃든 스탈린은 약 2000만명을 살상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사람을 살상하고 죽이는데 앞장선 사회주의 영에 대해서 바로 알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은 사회주의자들을 통한 이념의 영과 이단감별사들을 통한 교리의 영이 교회와 사람을 죽이는데 앞장을 섰습니다. 

 

최근에는 뉴스앤조이나 CBS같은 사회주의 영이 깃든 언론이 한국교회를 파괴하는데 앞장을 서고 있습니다. 사회주의 영은 교회를 파괴하는 것이 취미이기 때문입니다. 인권과 평화, 개혁, 해방 등을 명분으로 기독교의 본질을 파괴하고 있습니다.       

 

                                    

I. 사회주와의 공산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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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 사회주의

 

최근 정부의 이념문제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특히 일부 보수우파들은 현정부가 주사파라고 할정도로 이념문제가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합니다. 현재 대한민국은 좌우의 이념대립이 심각할 정도로 나뉘어 있습니다. 이념대립이라는 것은 사회주의와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대립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사회주의에 대해서 알 필요가 있습니다.

 

1) 사회주의의 정의

 

사회주의는 인간 개개인의 의사와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기 보다는 사회 전체의 이익을 중시여기는 이데올로기입니다. 사회를 중시하다보면 개인의 인격과 자유는 제한되기 마련입니다. 사회나 국가라는 보편개념에 개인의 인권과 권리는 땅에 묻히고 맙니다.

 

중세에서도 교회나 신이라는 보편개념으로 신도개개인의 권리는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는 당, 국가, 사회라는 보편을 중시하다 보니 개인의 권리가 실종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권리가 중시되느냐에 따라서 사회주의인지 민주주의인지 구분되는 것입니다.

 

북한은 막스-레닌주의 대신 김일성 주체사상과 사회주의를 헌법전문에 포함시켰습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사상과 령도를 구현한 주체의 사회주의조국입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창건자이시며 사회주의 조선의 시조이시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영생불멸의 주체사상을 창시하시고 그 기치밑에 항일혁명투쟁을 조직령도하시여 영광스러운 혁명전통을 마련하시고 조국광복의 력사적 위업을 이룩하시었으며 정치, 경제, 문화, 군사분야에서 자주독립국가건설의 튼튼한 토대를 닦은데 기초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창건하시였습니다”

 

대한민국의 헌법정강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강조한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인도와 동포애로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며,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며,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완수하게 하여,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면서 1948년 7월 12일에 제정되고 8차에 걸쳐 개정된 헌법을 이제 국회의 의결을 거쳐 국민투표에 의하여 개정한다.“


2) 사회주의의 유래

 

사회주의가 등장하게 된 것은 고대 그리스의 철학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아테네의 철학자 플라톤은 국가에서 통치계급의 재산의 공유와 국가에 의한 자녀의 공동 양육을 주장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사회가 조화롭고 자신의 역할에 따른 삶을 강조함으로써 이상 사회를 주장하게 됩니다. 중세 기독교에서도 사회주의 사상의 일면을 엿볼 수 있습니다. 기독교에서는 공동노동을 통한 생산과 이를 통한 소박한 삶을 강조하였습니다.


3) 사회주의의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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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사회에서는 경제적 불균형 해소를 위해 생산 수단의 공유화와 국가적 통제를 제시합니다. 사회 문제가 사유재산제에서 발생한다고 보아 생산 수단의 공동 소유 또는 국유화가 이러한 갈등을 종식시킬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생산 수단을 국가 소유로 하고, 각자가 노동을 통해 실현된 이익을 배분하는 방식을 취함으로써 누구나 평등한 사회를 추구하려는 경향을 보입니다.

 

이로써 사회 불평등의 원인이 되는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하고, 분배 문제의 형평성을 높임으로써 물질적 결핍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고자 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사회주의는 재화의 생산보다는 생산된 재화의 가치 배분에 더욱 관심을 두게 됩니다.

 

사회주의에서 실행하는 경제는 당이나 국가가 주도로 하는 계획경제입니다. 사회주의 경제는 필연적으로 계획경제이며, 그 경제계획 목표의 달성을 위하여 모든 경제활동은 집중적으로 관리됩니다.

 

사회주의 국가는 경제 발전이 자연성장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중앙 정부나 경제 계획 단위의 의도적인 계획에 의해 달성될 수 있습니다고 보고 시장의 역할을 제한하고 중앙 정부가 그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국가나 당이 보편개념이기 때문에 국가가 통제하는 것입니다.

 

자본주의에서는 생산수단의 사유를 전제로 하여 개인의 이윤, 효용을 극대화하는 자율성을 띠지만 사회주의에서는 계획경제를 실시하여 국가가 모든 생산요수와 생산물의 종류와 수량, 가격을 결정하고 있습니다. 보편을 중시하다 보니 국민개개인의 자율성을 중시하지 않는 것입니다.

 

교계에 있어서도 교단이라는 보편을 강조하다 보면 개교회나 개체교인의 권리를 침해할 소지가 있는 것입니다. 명성교회 사건은 교단의 보편성을 강조하다보면 개교회의 개체성을 침해할 수 있습니다. 교회의 자유보다 교단의 자유를 강조하는 것은 중세의 보편사고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B. 공산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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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는 사회주의의 일종으로서 사회주의를 거치고 마지막 단계에서 이루어지는 형태입니다. 그러므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는 구분하기 어려운 용어입니다.

 

공산주의도 사회주의처럼 생산수단에 있어서 공유를 중시합니다. 그래서 communism은 다른 사람들과의 ‘나눔’ 또는 ‘공유’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commune)에서 유래되었습니다.

 

그래서 공산주의에서는 해방과 평등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공산주의는 강요된 해방과평등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평등을 강조하다 보니 사회구성원 전체를 인위적으로 평등하게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적 소유보다는 국가소유, 사회소유를 주장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국가의 소유입니다. 공동체 구성원 모두의 소유입니다.

 

공산주의는 계급과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공산주의의 가장 본질적 요소는 사적 소유의 부정에 있고 개인의 재산이 인정되지 않습니다. 사회의 모든 재산은 사회의 소유로 되며, 사회 구성원들은 이들을 누릴 수 있으며, 이를 통해 계급이 없는 평등한 사회를 구현하려는 것을 이상으로 하고 있습니다.

 

공산주의를 태동시킨 사람은 마르크스입니다. 마르크스는 공산당 선언에서 사회 발전을 원시 공산사회로부터 고대 노예제 사회 중세 봉건주의 사회를 거쳐 근대 자본주의가 형성되었고, 그 이후에는 필연적으로 공산주의 사회가 도래한다고 주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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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회 역사의 발전단계는 각 사회의 계급투쟁의 산물이며, 전 세계 노동자들이 단결하여 자본가에 대항하여 투쟁함으로써 이를 실현시킬 수 있습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따라서 모든 사람이 평등한 공산사회는 반드시 도래할 것이며,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성공적으로 완수될 것이라 예언하였지만 예언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공산정권은 70년만에 무너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결국 막스는 모든 사람을 기만하였던 것입니다. 막스는 공산주의가 완성되는 과정에서는 사회주의 사회가 형성될 것이며 이는 공산사회로 나가는 과도기로 인식하고, 공산사회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프롤레타리아의 이익을 대변하는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필요하다고 보았습니다.

 

사회주의 사회에서 한단계 더 성숙하면 공산주의 사회가 등장하게 되고, 이 단계에서는 개인의 사유재산과 계급 및 국가가 완전히 소멸된 보다 높은 단계에 진입하게 된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막스의 예언은 빗나가고 말았습니다. 인간은 모두 막스에게 속은 것입니다. 그러나 공산당은 막스로 인해서 70년 동안 혜택을 보았습니다. 


II. 한국공산주의의 역사


 1) 이르크츠크 공산당(1918년 1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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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공산주의는 1917년 10월 러시아혁명이 일어난지 3개월 후 1918년 1월 22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미 1조선조 후기부터 가렴주구들의 수탈과 착취에 환멸을 느낀 사람들이 러시아 이르크추크에 터전을 두고 살기 시작했고 약 20만명이었습니다. 그들은 러시아에 귀화된 한인들이었습니다.

 

이르쿠츠크에 살고 있었던 김철훈, 최고려, 오하묵, 안병찬 등이 이르쿠츠크공산당 한인지부를 형성했습니다. 이들은 공산주의를 목적으로 당을 형성하여 공산주의에 대한 이해도 높았고 이들의 목표는 볼세비키당에 한인을 동원하여 외연을 한반도까지 넓히는 것입니다.

 

이들은 1920년에 전로고려공산당으로 명칭을 바꾸고 약칭으로 고려공산당이라고 했습니다. 이들이 고려공산당이라고 한 것은 상해고려공산당에 대해 자신들이 적통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2) 한인사회당과 상해 고려공산당 (1918년 6월 26일)

 

1918년 6월 26일에는 러시아 하바로브스크에서는 이동휘와 모스크바대학 출신인 박진순이 제1차 한인사회당을 결성하였습니다. 당시 이동휘는 기독교인이었고 항일운동을 위해서는 러시아의 힘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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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1919년 8월 상해에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국무총리로 부임했고, 1921년 1월에 한인사회당을 고려공산당으로 개명하였습니다. 처음에는 23명으로 출발하였는데 1922년 8월 공산당원의 숫자는 6,812명이었습니다.

 

그러다가 한형권과 김립이 수령한 레닌의 정치자금 때문에 이동휘는 국무총리직을 사임하고 모스크바로 떠났고 이탈자들은 이르크츠크 공산당으로 흡수되었습니다. 그 이후 이동휘는 상해공산당과 일본의 좌익과 연대하려고 하였으나 재기하지 못하였습니다.

 

그 이후 상해파와 이르크츠파가 파벌싸움으로 격렬하게 대립하자, 1국 1당을 주장하는 러시아 코민테른은 양측 해산을 명령하였습니다. 당시 여운형과 박헌영은 상해공산당에 있습니다가 이르크츠크파에 합류하였습니다. 


3) 조선공산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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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도 1925년 4월 17일 조선공산당창당식이 거행되었습니다. 참가자는 약 20명이었고 김재봉, 김찬, 조동호, 주종건, 유진회, 김약수, 조봉암, 박헌영 등이었습니다.

 

구성원성격으로볼 때 북풍회, 화요회, 상해파, 이르크츠크파가 가담하였습디다. 3.1운동이후 일제의 유화책으로 국외에 있는 공산당원들이 틈을 타고 들어와 공산당을 결성한 것입니다.

 

제1차 조선공산당은 반제, 반봉건, 민족해방운동을 주장하고 타도 일본제국주의, 조선민족 해방만세, 국제공산당만세 등의 슬로건을 제시하였습니다.

 

그러나 제1차 공산당은 1925년 11월에 발생한 신의주사건으로 붕괴되었습니다. 조선공산당은 1925년 11월 22일까지 7개월 동안 존속하였습니다.

 

그 이후 4차 공산당까지 결성을 하였으나 일제의 감시로 인해 결국 붕괴하고 말았습니다. 4차 공산당은 1928년 170명이 일제에 의해 검거됨으로 4차 공산당은 코민테른 지부로서 활동하지 못하였습니다.

 

조선공산당은 공식적으로 소멸하였으나 지하활동은 계속되었습니다. 1945년 8월 16일 해방이 되자마자 공산당은 다시 활동을 재개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지부를 장안에 두기로 하여 일명 장안파가 결성되었습니다. 이를 장안파공산당이라 합니다.

 

이들은 고려공산당 조직위원회와 합류하여 경성시 당부를 결성하였고 8월 20일에는 조선공산당 재건준비위언회가 결성되는데 이를 속칭 재건파라고 부릅니다. 당시에는 공산주의가 일제제국주의의 문제를 해결하고 만성적인 토지의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복음처럼 들렸습니다.

 

그래서 많은 지식인들이 공산주의 사상에 매몰되었던 것입니다. 해방이후 공산주의자들의 적극적인 활동으로 전국은 좌익으로 물들게 되었고, 심지어 좌익에 물든 사람들이 죽창을 들고 목회자와 신도들, 지주들을 죽이는데 앞장을 섰고 인민재판의 일원이 되어 사람을 죽이는데 앞장을 섰던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우익이 힘을 얻으면 좌익들을 살상하는데 물불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제주 4.3이나 여순반란사건은 우익들이 대거 민중들을 학살한 사건입니다. 이념투쟁은 양측 끊임없이 살상하는데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야말로 한반도는 피의 반도가 되었습니다. 6.25전쟁이 발생해서 남북한 양측이 약 200만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공산주의나 좌익의 사상은 사람을 죽이는데 앞장을 서고 있습니다. 러시아의 스탈린은 약 2000만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당이라는 보편가치를 위하여 살상을 했습니다.  

   
4) 조선인민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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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초 조선총독 아베 노부유키[阿部信行]는 한국에 있는 일본인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줄 협상 대상자로 한국의 민족지도자를 찾았습니다. 이때 건국준비를 위한 민족의 대표기관과 정치세력 형성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던 여운형이 그에 동조함으로써 협상이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건준위의 설립목적은 민족의 총역량을 일원화하여 자주적으로 과도기의 국내질서를 유지하는 데 있었습니다. 8월 18일 제1차 위원회를 개최하여 건국공작 5개 항을 제시하였고 9월 2일 강령을 발표하였습니다.

 

그 내용은 '① 우리는 완전한 독립국가의 건설을 기함 ② 기본요구를 실현할 수 있는 민주주의적 정권의 수립을 기함 ③ 우리는 일시적 과도기에 국내질서를 자주적으로 유지하며 대중생활의 확보를 기함'이라는 3개 항이었습니다.

 

건준위는 일본 경찰조직을 밀어내고 각 지방의 조직으로 확대되었고 지방마다 조직의 이름은 달랐지만 치안대, 보안대 등의 이름으로 145곳에서 조직되었습니다.

 

그러나 건준위가 지나치게 좌익진보세력으로 조직되자 민족주의계 인사들이 이에 반발하여 탈퇴하여 새로운 양상이 전개되었습니다. 당시 건준위 부위원장 안재홍도 탈퇴하여 9월 1일 조선국민당을 창당하였습니다.

 

정백·고경흠 등의 간부들도 탈퇴하여 위원회의 승인 없이 경성지부를 결성하였고, 9월 4일 위원회 전체회의가 열려 집행위원회 개편을 단행하였고 9월 6일에는 600여 명으로 구성된 전국인민대표자회의를 소집하였습니다.

 

경기여자중학교에서 열린 이 회의에서 '조선인민공화국 임시조직법안'이 통과된 뒤 조선인민공화국 수립을 발표하였습니다. 따라서 건준위는 9월 7일 해체되고 9월 11일 조각을 단행하였습니다.

 

조선인민공화국은 1945년 9월 6일 전국인민대표자회의에서 여운형이 이끄는 조선건국준비위원회가 정치적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 선포한 조직입니다. 이들을 정치적 성향별로 분류하면 민족주의자 9명, 여운형계의 중도좌파가 10명, 그리고 3분의 2 가량이 공산주의자였습니다.

 

상징적으로 주석 이승만, 내무부장 김구를 내세우기는 하였으나, 정작 이승만과 김구 본인은 이 단체의 공식 직책을 수락하지 않았습니다. 이후 여운형도 이 조직에서 사실상 배제되고 극좌파인 박헌영이 주도권을 장악했으나, 남북, 미국, 소련에게 인정받지 못하게 되어 1946년에 민주주의민족전선으로 해산, 재집결되었습니다. 조선인민공화국 해체 후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습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건준위를 반대하고 임시정부의 귀국을 기다리던 김성수·송진우·장덕수 등 우익진영은 이들 조직을 벽상조각(壁上組閣)이라고 비난하였습니다.

 

그후 해외 독립운동지도자들이 귀국하고 이승만이 주석 취임을 거절하는 한편 미군정청에서 10월 10일 조선인민공화국의 승인을 거절하는 포고를 발표하자 조선인민공화국은 자연 해체되었습니다.

 

 

III. 한국과 막스의 피해

 

1) 제주 4.3, 여순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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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 일제는 공산주의에 대해 "인류의 공적이요 세계상의 악마적 존재"로 평가했습니다. 그러나 해방직후 많은 한인들은 공산주의자들의 탈선비행은 나쁘지만 그 이념만은 알고보면 국민의 대부분이 참으로 환영하여야 할 것이라고 하여 공산주의에 대한 우호적인 시각도 있었습니다. 오히려 미국에 대해서는 감사와 우호의 시선을 보내기도 하였지만 동시에 경계와 적대의 이중적인 입장도 있었습니다.

 

194512월 말 '신탁통치 파동'이전에 남한에서 조선공산당과 좌익에 대한 비난은 있었지만 공산주의 자체를 비판하는 공식적 논의는 거의 없었습니다. 공산주의도 항일의식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 민족은 공산주의에 대해서 그렇게 적대적인 감정을 갖고 있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공산주의는 착취를 근절해서 노동 대중을 잘 살게 하는 이념으로 농민과 노동자를 위한 이상적 사회의 실현을 목적으로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에 해방 이후 정신적 공황에 빠져있던 한민족은 우선 지식인들이 공산주의사상에 연대했고 점차 소작인이나 농민들이 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여순사건이나 제주 4.3 사건은 일부 남로당 출신 사람들이 봉기하거나 이를 이용한 것은 사실이지만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사상을 전혀 알지못하는 무지몽매하거나 소작인들이 사회주의에 대한 환상을 가지면서 아무것도 모르고 가담을 했거나 좌익(빨치산)들을 도와주면서 도매급으로 좌익으로 몰려 대규모 학살을 당했던 사건입니다.

  

제주 4.3 사건도 우연잖게 말에 탄 경찰이 아이에게 부상을 입히면서 이에 항의하는 민중들을 향하여 경찰이 총을 쏴서 6명을 학살하자, 경찰과 민중의 싸움으로 시작한 것이 좌우의 극한 대립으로 몰고가 민중들이 좌익으로 몰리면서 무참하게 희생을 당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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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 이 없었다면 여순반란은 없었을 것입니다. 제주 4.3도 처음부터 남로당이 주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이 폭동을 이용하였을 뿐입니다.

 

남로당과 좌익들은 당시 많은 기독교인들을 죽이고 교회를 불태우기도 했습니다. 이념앞에 자신과 다르면 모두 적이었습니다. 이도종목사나 영광, 영암의 많은 신자들이 좌익에 의하여 희생되거나 생매장 당했습니다.

 

이처럼 극단적인 이념은 사람을 죽이는데 앞장서고 있습니다. 예수를 앞세운 서북청년단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익이든좌익이든 이념이 극단화 되었을 때 사람을 죽이는 쪽으로 갑니다.

 

2) 한반도와 막스의 영

 

변칙 막스 레닌주의의 김일성주체사상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청와대 한가운데 있는 것도 이념논쟁을 부추킵니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의 신영복 존경발언, 김원봉 서훈발언, 윤이상 묘지 참배 행동 등은 좌우 이념 논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습니다. 이는 대통령의 역사의식 부재입니다. 어설픈 역사적 지식이 국론을 분열시키기 때문입니다.

 

현재 한국사회는 1885년에 미국을 통하여 들어온 기독교 사상과 1920년도 중국을 통하여 들어온 막스레닌주의 사상이 한반도에서 지금까지 대립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연유 때문입니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가 그래서 중요한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현 정부는 미국보다 중국을 선호하고 있습니다는 느낌을 받고 있습니다. 1920년대 여운형과 박헌영은 미국유학이 좌절되자 중국을 선택해서 공산주의 이론을 배웠습니다. 그들이 미국으로 유학을 갔더라면 이승만처럼 기독교정신을 가졌을 것입니다.

 

한국정부가 우환 코로나를 일찍부터 차단하였더라면 한국은 이처럼 고통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중국에서 공산주의를 배운 박헌영은 여운형과 함께 승동교회를 다녔던 사람이지만 결국 공산주의를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미국대신 중국을 선택하게 되었고 기독교사상대신 막스레닌주의 사상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막스레닌주의를 한국에 실현하려고 했던 사람은 박헌영이었습니다.

 

이러한 박헌영과 김일성의 사상은 운동권의 주사파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민주주의에서 주사파는 어떤 일을 하기 어렵지만 이들이 정권에 들어가 기독교정신을 파괴하는 운동은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IV. 결론

 

기독교는 인간의 이념과는 차원이 다른 사상이다. 인간의 이념은 땅에서 이루어질 일에 대해서 관심을 갖다보니 서로 입장이 다르면 살상으로 나타나지만 기독교의 예수정신은 인간의 이념에 의해서 희생을 당해도 같이 죽이는 것이 아니라 살리는 정신입니다. 이것은 좌익을 용서한 손양원목사의 입장에서 잘 나타나 있다.

 

우익이라고 해서 기독교정신을 갖고 다른 사람을 죽이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한반도에 기독교가 전파될 때, 이미 조선인들은 러시아에 이주하여 살고 있었고, 그들은 공산주의를 접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즉 한쪽에서는 남을 죽이는 좌익이, 다른 한쪽에서는 남을 살리는 복음이 전파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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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기독교는 코로나와의 전쟁이기도 하지만 반기독교정신이자 사회주의 영인 이념과의 전쟁이기도 합니다. 양심의 자유를 갖고 신앙의 본질이 훼손을 당하거나 피해를 당하면 싸울 것은 싸워야 합니다.

 

정신이 정치에 패배할 때 일제의 속국이 되었고, 신앙이 정치를 극복하지 못할 때 신사참배를 하게되었고, 신앙이 이념에 압도당할 때 북한이 공산화 되었고, 신앙양심이 마비되었을 때 국가의 신하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결국 예수의 영이 사회주의 영을 극복할 때 진정한 신앙의 자유를 만끽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기독교사회주의와 사회주의 영이 판을 치는 시대이기 때문에 바르게 영분별을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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