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신대 교수들, "한의 치유가 구원의 수단" 신학적 논란

교수들, 종교심리학의 비성서적, 비신학적 논문을 성서적, 신학적 논문으로 둔갑시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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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1-02-16 [22:34]

  김운용교수와 이상학목사

 

장신대 조직신학자들이 이상학논문과 관련  한의 치유가 구원의 수단이 될 수 있는지요? 에 대한 질의에 대해  "본 논문은 성경에서 드러나는 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과정안에 치유가 포함될 수 있는지를 논구하며, 특히 한이 경험하는 개인들에게  한의 치유가 구원의 과정안에 어떻게 작용할 수 있는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고 하여 한의 치유도 구원의 과정이라고 판단하여 종교심리학의 영역을 신학의 영역으로 해석하여 신학적 논란을 빚고 있다. 이에 대해 총회가 개입할 필요가 있다.

 

이경의 vs. 김운용

 

먼저, 이상학목사논문과 관련하여 문제를 제기한 이경의 집사와 장신대 김운용총장대리의 대화를 들어보자.

 

이경의 집사는 장로교신학대 교수들의 자질을 문제 삼았다. 교수들 서명이 없는 이유에 대해 김교수는 자신이 보증하기 때문에 서명이 없어도 괜잖다고 했다.

 

이어 김교수는 이 논문에 대해서 논쟁할 이유는 없고 개인의 질의에는 응답하지 않고 당회의 질의에 대해서는 응답하겠다고 했다. 

 

이경의 집사는 장신대 교수들이 논문을 다 읽지도 않고 답변을 썼다고 했다. 이집사는 교수들이 전혀 읽어보지도 않고 답변을 적었다고 항의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들어보자.    

 

https://youtu.be/fxKOu0JSt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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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신대 조직신학 교수 3인이 검토

 

김총장대리는 총장 직속 검토위원회는 본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3인으로 구성되었으며, 몇 차례 회의를 통해 검토하여 작성된 문건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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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총장직무대행이름으로 나간 문서는 "본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3인으로 구성되었으며"라고 했지만 사실은 2명은 이미 은퇴한 교수들이다.

 

김운용 총장대리는 자신이 개런티 할 수 있다고 말을 했다. 김총장대리는 3 명이 논문전체를 다 읽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이경의 집사는 이상학목사의 논문건으로 총회 이대위에서 답변을 얻고자 질의하였으나 총회임원회는 이대위에 보내지 않고, 다시 내려보냈다.

 

새문안교회당회가 직접 장신대 교수들에게 위임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이경의 새문안교회집사는 당회에 질의하자, 당회는 장신대 교수들에게 논문을 평가해 달라고 요청했다.   

 

장신대 교수들은 1) "이상학목사의 박사학위 논문이 예장통합교단의 헌법에 나오는 교리편과 일치하는지요"라는 질의에 대해

 

"본 논문은 한국에서 한을 경험하는 개인들에게 초점을 두면서 구원을 한의 치유의 관점에서 이해하려고 시도하며, 한의 치유가 구원의 과정안에서 포함될 수 있는지를 상세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이러한 점은 성서에 나오는 상한 마음을 치유하시는 메시야의 사역(사61장)과 다른 본 교단의 교리편(특히, 21세기 신앙고백서)이 말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사역의 넓은 차원에 포함될 수 있다고 판단합니다. 이런 점에서 본 논문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에 대한 이해를 더 풍성하게 해줄 수 있습니다"고 했다.        

 

2) 한의 치유가 구원의 수단이 될 수 있는지요? 에 대해

 

"본 논문은 성경에서 드러나는 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과정안에 치유가 포함될 수 있는지를 논구하며, 특히 한이 경험하는 개인들에게  한의 치유가 구원의 과정안에 어떻게 작용할 수 있는지를  다루고 있습니다"고 했다.

 

3) 한은 우리 민족의 극도의 슬품이 녹아진 종교심리학적인 용어인데 기독론을 대신할 수 있는 용어인지요?에 대해 

 

장신대 조직신학자들은 " 본 논문은 서론에서 논문의 다섯가지 주용한 한계들을 극복하고(p5-6) 결론에서 논문의 네가지 중대한 한계점을 언급하고 있는데(p. 216),  특히 후자의 4번째 한계점에서는 본 논문이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성을 다루는 기독론을 연구하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습니다(p. 216). 그러기에 본 논문은 한의 용어로 기독론을 대신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 대신에 본 논문은 한을 경험한 개인들의 치유가 예수 그리스도의 치유사역에 연결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고 했다. 

 

4) 한은 구조적인 악으로서 민중의 개념에서 출발한 단체의 정서를 뜻하는 개념이고, 속죄개념은 죄를 용서받는 개인의 개념인데, 단체의 개념이 개인의 개념을 대신할 수 있는지요?에 대해

 

장신대 교수들은 "한은 집단적이고 구조적인 측면과 그 구조 안에서 영향을 받는 이들의 개인적인 측면을 모두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본 논문은 민중신학의 집단적 정서로의 한보다는 개인이 경험하는 아픈 상처로서의 한을 다루고 있기에 본 논문이 단체의 개념을 개인의 개념으로 대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습니다"고 했다.

 

5) 한을 통한 개인의 구원의 개념을 주장하는 것이 기독론에 벗어난다고 판단하는데 교단헌법에 비추어 볼 때 교리적으로는 하자가 없는지요지요?  에 대해

 

장신대 교수들은 "본 논문은 서론에서 논문의 다섯가지 주요한 한계들을 언급하고(p.5-8), 결론에서 논문의 네 가지 중대한 한계점들을 언급하고 있는데(p. 216), 특히 후자의 네번째 한계점에서는 본 논문이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성을 다루는 기독론을 연구하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습니다(p.216). 그러기에 질의 5)는 본 논문에 해당되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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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의 집사, 과연 영어해독이 가능한 교수들인가?


이에 대해 이경의 집사는 검토위원들이 영어해독이 가능한 분들이신지, 올바른 신앙과 신학적 지식을 겸비하신 분들이신지? 김운용총장께 내용증명을 보냈다.

 

이유는 장신대 교수들이 질의 5)에 대해 "결론에서 네가지 중대한 한계점들을 언급하고 있는데 (p.216), 질의 5)는 본 논문에 해당되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고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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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이집사는 216p 문장을 보면 교수들의 해석이 잘못되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216 p를 보면 교수들이 답변한 내용이 아예 없기 때문이다. 216를 보자. 

 

Christ in going deep into the roots of human' woundedness. As han cannot sleep until it is resolved, so salvation cannot be accomplished until the triune God entirely heals, transforms, and overcomes the source of evil at its root.
 

인간의 상처의 뿌리가 해결될 때까지 한은 잠을 잘 수 없듯이, 삼위일체 하나님이 전적으로 치료하고, 변형시키고, 한의 뿌리에 있는 악의 근원을 극복할 때까지 구원은 성취될 수 없다.

  

  이상학목사 박사논문 216p.

 

이경의 집사, "장신대 교수들, 이상학 비서실 직원이나 대변인처럼 해석" 주장


그러나 장신대 교수들은 "본 논문은 서론에서 논문의 다섯가지 주요한 한계들을 언급하고(p.5-8), 결론에서 논문의 네 가지 중대한 한계점들을 언급하고 있는데(p. 216), 특히 후자의 네번째 한계점에서는 본 논문이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성을 다루는 기독론을 연구하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습니다(p.216)"고 했다. 

 

이집사는 "216p 는 그러한 말이 없다고 하면서 중학생정도만으로도 해석이 가능한 문장임에도 3인의 검토위원인 대학교수께서 이 문장을 해석했다고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고 했다. 이집사는  "귀 검토위가 마치 이상학목사의 비서실 직원이나 대변인 처럼 대신 답변을 하고 있으며, 내용과도 전혀 상이한 동문서답을 하고 있다"고 했다.

 

평가

 

장신대 총장직속 검토위원회는 이상학목사의 논문의 결론에서 논문의 네가지 중요한 한계점을 언급하고 있다고 하는데 결론에는 그러한 말이 없다. 

 

"결론부분의 네번째 한계점에서도 본 논문이 예수그리스도의 정체성을 다루는 기독론을 연구하지 않았다고 밝혔다"고 하는 부분도 결론부분에 존재하지 않는다. 결론을 보자.    

 

3. Conclusion (215-216p)

 

In this chapter, I have explored the possibility of constructing a therapeutic model of salvation from the experience of han. I have suggested four propositions: reinterpreting sin as damage/wound, or replacing dominant metaphor of sin, i.e., sin as guilt, with that of wound; salvation as the recovery of full humanity and divinity; salvation as selfacceptance; and salvation as an ongoing process of healing and sag-him.

 

결론(215-216p)

 

이번 장에서 나는 한의 경험으로부터 구원의 치료 모델을 구축할 수 있는 가능성을 탐구했습니다. 저는 네 가지 명제를 제안했습니다:

 

1) 죄를 상처로 재해석하는 것, 2)종교적 죄를 상처의 은유인 유죄로, 3) 구원을 신성과 인간성의 회복으로,  4) 구원을 삭힘과 치유의 지속적인 과정으로 대치하는 것이었습니다.

 

An attempt to construct a therapeutic understanding of salvation is not a new endeavor in the history of Christian theology. I have already discussed how the Greek (Eastern) Fathers' tradition long ago presented a primarily therapeutic view of the atonement using terms such as "healing," "wound," "medicine," and "cure" in their writings for the early church. Almost all traditional Christian doctrines have rich potential for presenting insights related to this model in the contemporary context. 

 
구원에 대한 치료적 이해를 구축하려는 시도는 기독교 신학사에서 새로운 노력이 아닙니다. 나는 이미 오래 전에 그리이스 (동방의) 교부들의 전통이 그들의 저서에서 어떻게 치유", "상처", "의학", "치료"와 같은 용어를 사용하여 속죄에 대한 치료적인 관점을 제시했는지에 대해 논의하였습니다. 

 

거의 모든 전통적인 기독교 교리는 이 모델과 관련된 통찰을 제시할 수 있는 풍부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However, for Christians who have long been under the sway of problematic dogma, introducing the language of han into Christian theology is a fresh approach that will help us understand our suffering, and will encourage us to follow Korean Confucianism.

 

As a religion that has experienced longtime persecution in Korean history, the Korean Catholic church construes han as redemptive power. This is fully revealed in the interpretation of suffering amidst the situation of persecution. Han, experienced in the context of religious persecution, is not construed as passive tribulation in an unavoidable situation; it is seen as a kind of prophetic suffering, followed by moral/ethical righteousness. Myeung-Kon Lee, "Han in the Korean Catholic History of Persecution," in Jin Kim et al.
  
한국의 유교 한국 역사에서 오랜 박해를 경험한 종교로서 한국 가톨릭 교회는 한을 구원의 힘으로서 해석하였습니다. 이는 박해 상황 속 고통의 해석에서 충분히 드러난다.

 

종교적 박해라는 맥락에서 경험된 한은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수동적인 수난으로 해석되지 않고 일종의 예언적 고통으로, 도덕적·윤리적 의리가 뒤따릅니다.

 

Christ in going deep into the roots of human' woundedness. As han cannot sleep until it is resolved, so salvation cannot be accomplished until the triune God entirely heals, transforms, and overcomes the source of evil at its root.
 

인간의 상처의 뿌리가 해결될 때까지 한은 잠을 잘 수 없듯이, 삼위일체 하나님이 전적으로 치료하고, 변형시키고, 한의 뿌리에 있는 악의 근원을 극복할 때까지 구원은 성취될 수 없습니다.

 

장신대 검토위원들은  "결론에서 논문의 네 가지 중대한 한계점들을 언급하고 있는데(p. 216), 특히 후자의 네번째 한계점에서는 본 논문이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성을 다루는 기독론을 연구하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습니다(p.216)"고 한 것은 정상적인 해석이나 번역에서 빗나갔음을 알 수 있다. 소설식 해석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새문안교회 이상학목사의 논문의 문제점을 들고 나온 이 집사는 "216p 는 "그러한 말이 없다"고 하면서 "중학생정도만으로도 해석이 가능한 문장임에도 3인의 검토위원인 대학교수께서 이 문장을 해석했다고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고 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이집사는  "귀 검토위가 마치 이상학목사의 비서실 직원이나 대변인 처럼 대신 답변을 하고 있으며, 내용과도 전혀 상이한 동문서답을 하고 있다"고 했다.

 

결론: 소설식 해석 (이상학 봐주기)

 

한 치유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넓은 차원에 포함될 수 있다?

 

장신대 검토위원들은 페이지에도 없는 소설식 해석을 하였고, 김운용교수는 "본대학 3인의 조직신학자를 구성하였다"고 하여 마치 현직에 있는 조직신학자인 것처럼 착각을 하게 하였다. 특히 조직신학자들은 이상학목사 대변인처럼 해석을 왜곡하였다. 이상학 봐주기 소설식 해석이다. 한치유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넓은 차원에 포함될 수 있다고 했다.

 

 "본 논문은 한국에서 한을 경험하는 개인들에게 초점을 두면서 구원을 한의 치유의 관점에서 이해하려고 시도하며, 한의 치유가 구원의 과정안에서 포함될 수 있는지를 상세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이러한 점은 성서에 나오는 상한 마음을 치유하시는 메시야의 사역(사61장)과 다른 본 교단의 교리편(특히, 21세기 신앙고백서)이 말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사역의 넓은 차원에 포함될 수 있다고 판단합니다. 이런 점에서 본 논문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에 대한 이해를 더 풍성하게 해줄 수 있습니다"

 

반박: 조직신학자들이 신학을 잘못 조직하고 있어

 

구원을 한의 치유의 관점에서 이해하려고 하는 것조차가 구원을 종교심리학적인 관점에서 해석하려는 것이고, 한의 치유가 본교단 교리편이 말하는 예수그리스도의 구원의 사역에 포함될 수 있다고 해석하는 것 조차가 반헌법적이고 반성경적이다. 

 

한은 종교심리학적인 영역이고, 구원은 신학의 기독론적인 영역이다. 한의 치유가 구원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종교심리학의 수단이 구원이라는 목적을 이룰 수는 없다. 이는 조직신학자들이 신학을 잘못 조직하고있는 것이다.  

 

장신대 교수들, 한의 치유가 구원의 과정안에서 작용

 

2) 한의 치유가 구원의 수단이 될 수 있는지요? 에 대해 장신대 조직신학자들은 "본 논문은 성경에서 드러나는 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과정안에 치유가 포함될 수 있는지를 논구하며, 특히 한이 경험하는 개인들에게  한의 치유가 구원의 과정안에 어떻게 작용할 수 있는지를  다루고 있습니다"고 한 것은 한과 구원을 구분하지 못하는 처사이고, 한의 치유는 구원의 과정에서 작용할 수 있는 여지는 전혀 없다.

 

한은 인간적 차원에서 정서의 영역이고 구원은 신적 차원에서 기독론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장신대 조직신학자들이 종교심리학의 영역과 신학의 영역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한의 치유가 구원의 수단이라는 비신학적인 주장을 하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한을 상담하여 치유하면 구원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상학은 구원의 법정개념을 한의 치유의 개념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논문의 중요성'(Significance of This Dissertation)이라는 섹션에서 한의 렌즈를 통해서 죄의 의미론을 재해석해야한다고 주장한다.   http://www.kidogkongbo.com/2077

 

한의 경험의 특성과 본성과 관련된 많은 연구들이 인류학, 심리학, 사회심리학의 분야에서 이루어졌다할지라도 한의 신학적 연구는 기독교적 전통과 거의 대화를 하지 않았다. 

 

특히 죄악과 기독론의 은유(비유)에 대한 한의 상호관련성이 많이 발전되지 않았다. 이 연구는 한의 경험을 죄악의 기독교적 언어에 가져옴으로써  한의 렌즈를 통해서 죄의 의미론을 재형성하게 된다.  

  

게다가 치유의 메타포(은유)를 속죄론의 한가운데 가져옴으로서 구원과 죄사이 에서의 중요한 관련성에 신학적 통찰력을 가져다 준다.

 

이 논문은 죄의 언어를 평가절하하는 것보다 한의 언어와 한이나 깊은 상처 같은 죄의 치유모델 사이에 건설적인 관계를 제안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논문은 전통적인 신학적 인류학을 넘어서서 인간곤경을 보다 깊이 이해하는데 공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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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에서 이목사는 죄와 한, 복음과 한의 연결을 시도하고 있다.  그리고 기독교가 지나칠정도로 구속의 개념을 남용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이목사는 한의 치유의 모델을 끌어들이면서 자신의 논문이 그리스도 구속의 모델을 강제퇴위 시키고 있다고 주장한다.  

 

장신대 교수들의 3번째 답변을 보자.

 

3) 한은 우리 민족의 극도의 슬품이 녹아진 종교심리학적인 용어인데 기독론을 대신할 수 있는 용어인지요?에 대해  장신대 은퇴조직신학자들은 " 본 논문은 서론에서 논문의 다섯가지 주용한 한계들을 극복하고(p5-6) 결론에서 논문의 네가지 중대한 한계점을 언급하고 있는데(p. 216),  특히 후자의 4번째 한계점에서는 본 논문이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성을 다루는 기독론을 연구하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습니다(p. 216). 그러기에 본 논문은 한의 용어로 기독론을 대신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 대신에 본 논문은 한을 경험한 개인들의 치유가 예수 그리스도의 치유사역에 연결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고 했는데 이 또한 사실이 아니다.

 

장신대 조직신학교수들이 종교심리학적인 용어와 기독론적인 용어를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

 

216p 에 " 본 논문이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성을 다루는 기독론을 연구하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라는 말이 없다.  

 

김운용총장대리는 마치 사실인 것처럼 언급하고 장신대의교수들이 권위를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교수의 권위와 총장대리의 권위갖고서 사실을 왜곡하였다. 장신대 교수들은 논리학의 오류론 중에서 권위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 팩트를 권위로 밀어부쳐 진실을 왜곡하여 새로운 팩트로 만들려는 것이다.  

 

이상학 한명을 살리자가 신학자체를 죽이고있다.장신대 교수들의 양심의 부패인 것이다. 조직신학자들이 신학을 잘못된 방향으로 조직하고 있다. 조직신학자들이 교리적 주장을 심리학적 주장으로 대치하고 있다. 

 

한의 경험을 구원의 수단으로 연결시키려고 하는 것은 인본주의적이고 반신학적, 반성경적 해석이다. 김운용교수는 이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지고 총장지원은 물론, 교수에서도 사퇴해야 한다. 한은 구원의 수단이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총회임원회는 이상학목사 논문건에 대해서는 장신대 교수가 아니라 이대위에서 해석하도록 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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